< 바늘><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조영만신부님강론

Posted by 안미경(마르타)
2017.08.22 23:47 신빈회 급식/기도하는방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INTRO)
어제 미사 때 말씀드린데로 ‘비오’ 교황들의 시대에 교회가 걸었던 보수화의 여정에 마지막 방점은 마리아론에서 빛을 발합니다. 마리아에게 ‘여왕’이니 ‘모후’니 하는 칭송들은 근대 ‘황제적 사고’에서 기인하는 것들이지요.

교회를 향한 세상의 공격에 맞서 교회가 스스로 비빌 언덕을 마리아에게서 찾은 것도 있고 또 하나, 이 세기에 워낙 예수에 대한 역사적 연구, 인간학적인 접근이 주류를 이루다보니 예수의 인성에 주안점을 두고 그런 분이 곧 우리의 구세주가 되셨기 때문에 주님의 어머니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영광에 대하여 피력한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결론은 그렇습니다. 마리아에 대한 모든 공경은 그리스도 예수에게로 향해야 한다는 사실이지요. 마리아 때문에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되심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의 구세주이시기 때문에 그 어머니 또한 공경 받으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 축일 중에 하나, 여왕이신 어머니 축일입니다. 잠시 침묵합시다.

(강론)

< 바늘>

바늘의 미덕을 생각해봅니다. 바늘은 바늘 그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첫째로 바늘은 상처난 것을 꿰매줍니다.
둘째로 바늘은 헤어지고 떨어지고 갈라진 것들을 이어줍니다.
고쳐주고 이어주고, 용처가 끝난 바늘은 거기에 남아 있거나 붙어있지 않습니다.
바늘은 사라집니다.

복음에서 말하는 바늘이 실제의 바늘을 말하는 것인지, 야심한 시간 성밖을 오가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열어두었다던 ‘바늘 문’을 뜻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부자가 빠져 나가기 어렵다는 바늘의 의미는 정확합니다.

자기 것을 만드는 이가 부자라면 바늘은 그러한 길을 가지 않습니다.
바늘에게는 자기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곱고 유려하고 화려한 옷 한 벌을 지었다해도 그것은 바늘의 것은 아닙니다.
바늘이 자기 소유라고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메리놀병원 외과 의사들이 매일 같이 바늘로 수술을 해도 그렇습니다.
바늘은 그냥 바늘의 소임을 다하고 사라질 뿐입니다.

부자와 바늘. 예수께서 의도하신 것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으나
이처럼 정확하고 극명한 대비를 통한 결론은 충분합니다.

구원의 길은 소유에 있지 아니하고 존재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늘과 같은 존재.
바늘을 통과해야만 갈라진 것은 이어질 것입니다.

영혼과 육신, 상처와 치유, 죽음과 생명, 멸망과 구원.
이 모든 것이 바늘을 통하지 않고 이어질 수가 없습니다.

바늘을 통과해야만 하나가 됩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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